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 1956년 초봄 명동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대폿잔을 기울이며 시를 쓰고 곡을 짓고 노래 부르다 세월이 가면 가을이 와 낙엽이 지고 머리카락이 빠져 민둥산이 되고 겨울이 와 눈이 덮이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자던 사람도 가고 2012.11.17. 시 2012.11.28
하루하루 하루하루 구자운 매일 우체부가 와도 아무런 소식도 없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낮잠도 자고 보고프면 책을 보고 쓰고프면 시를 쓰고 그저 그렇게 지내며 그냥 하루를 보낸다 2012.10.26. 시 2012.10.27
홍시 홍시 여름 여자가 아니고 늦가을 여인 인지라 노을의 어여쁨을 듬뿍 받았음인지 부끄럼이 많아서 홍당무가 되었나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연지곤지 볼이 터질 것 만 같아 2012.10.12. 시 2012.10.23
꽃게 꽃게 모내기할 땐 꽃게탕이 제맛이고 추수할 땐 꽃게무침이 제맛이다 5월에는 암꽃게가 제철이고 9월에는 숫꽃게가 제철이다 꽃게는 알칼리식품과 같이 먹어야 음식궁합이 맞고 꽃게와 산성식품을 같이 먹으면 식중독을 일으킨다 꽃게는 익히면 꽃 색깔과 같이 붉은색이고 익히지 않으.. 시 2012.10.23
가을엔 가을엔 구자운 끙끙 앓는다고 고민이 해결되고 고상한 척 한다고 고상해지던가 낙엽이 지면 나도 모르게 쓸쓸해져 누가 오는가 창밖을 내다보게 되고 단풍이 붉게 물들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코스모스가 핀 들길을 거닐어 보고 싶어진다 2012.10.11 시 2012.10.16
가을이예요 가을이예요 구자운 귀뚜라미는 가을이 오는 게 반가워서 귀뚜르 하고 울고 찌르르기는 여름이 가는 게 아쉬워서 찌르르 하고 운다 아침저녁으론 긴소매를 입어야 할 만큼 서늘하다 계절의 화가는 먼 산에서 부터 색칠하기 시작했다 2012.10.11. 시 2012.10.12
나는 실존적 존재인가 나는 실존적 존재인가 나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존재로 태어났는가 나는 부모님의 쾌락의 부산물로 태어난 게 아닌가 이 세상엔 이미 다른 사람들로 꽉 차졌는데 나까지 더 보태어져 어떡하겠다는 건가 이미 은퇴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더 살려고 바둥대는 건 나의 이기심 .. 시 2012.09.21
천고마비의 계절에 천고마비의 계절에 구자운 비 그치고 해 나오니 구름은 산 위로 물러나고 시야가 트여 눈이 밝아와 아침상을 물리고 읽다 만 책을 펼쳐 책상머리에서 한 나절을 보낸다 2012.09.05. 시 2012.09.09
숫돌의 미덕 숫돌의 미덕 칼은 수시로 숫돌을 찾는데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걸 보면 숫돌은 칼을 좋아하나봐 원수 놈의 칼인 줄도 모르고 날을 세워주다가 나중에 그 원망을 어찌 다 들을꼬 제 몸 달아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남을 위해 봉사하니 후제 복 많이 받을 거여 2012.08.11. 시 2012.08.15
살구 살구 살구나무는 대개 장독간 근처에서 자라는데 아이들이 살구를 따먹고 싶어서 돌을 던졌다가 장독뚜껑을 깨어 할머니에게 혼난 기억을 다들 가지고 있지요 장마철이 되자 살구가 제 홀로 살고 싶어서 엄마 품을 떠나 땅에 나뒹굽니다 아이들은 떨어진 살구를 주워 먹고 싶어 늦잠꾸러.. 시 2012.07.08